1. 사직서 봉투를 만지작거리던 그 날
지난겨울 어느 저녁, 마감하고 텅 빈 대기실에 혼자 앉아서 사직서 봉투를 꺼냈다 도로 넣었다를 몇 번 반복했어요. 3년 다닌 매장이었고, 정 붙은 손님도 많았고, 실장님도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그날따라 유독 이걸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몇 달 전부터 손목이 시큰거리는 날이 늘었고, 정산일마다 숫자가 조금씩 애매하게 맞아떨어졌고, 그런 것들이 조용히 쌓인 거였어요. 손목 얘기는 3년차 되니 몸이 먼저 신호 보내더라는 글에도 좀 풀어놨는데, 그때는 참는 쪽을 택했다면 이번엔 좀 달랐어요.
결국 그날은 봉투를 다시 가방에 넣고 집으로 갔어요. 대신 다음 날부터 감정이 아니라 숫자부터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2. 그만두기 전에 계산기부터 켠 이유
이직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보통 새 매장부터 찾아보기 시작하잖아요. 저는 반대로 했어요. 지금 매장에서 제가 아직 받을 게 남았는지부터 계산했어요. 연차를 못 쓰고 넘어간 게 며칠인지, 이번 달 정산에서 빠진 인센티브가 있는지, 계약 형태가 3.3%였는지 4대보험이었는지에 따라 퇴사 절차가 달라진다는 것도 그때 처음 제대로 알았어요.
프리랜서 계약이면 정해진 퇴사 통보 기간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실장님한테 언제까지 말씀드려야 서로 곤란하지 않을지 먼저 여쭤봤어요. 저는 그동안 매달 들어오는 돈만 봤지, 급여 구조를 제대로 따져본 적이 없더라고요. 급여 형태 비교해둔 글을 그제서야 찾아봤는데, 진작 봤으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3. 미리 알아본 매장들,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신입 때는 급여 숫자만 보고 매장을 골랐어요. 근데 이번엔 달랐어요. 계약서를 쓰는지, 대기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되는지, 교육 기간에도 급여가 나오는지부터 물어봤어요. 서울 채용공고를 하나씩 훑어보면서 조건이 비슷비슷해 보여도 문구 하나 차이가 크다는 걸 알게 됐어요.

면접 잡기 전에 공고를 캡처해뒀다가 면접 자리에서 다시 확인하는 습관도 이때 생겼어요. 경력이 있으니까 물어볼 게 많아졌고, 오히려 신입 때보다 면접이 더 길어지더라고요. 저쪽에서도 경력자한테는 다르게 물어보는 것 같았고요.
4. 이력서에 경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한참 고민했어요
3년 경력을 이력서에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냥 근무 기간이랑 매장 이름만 적으면 되나 싶었는데, 그러면 제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요. 이력서 첫 줄에서 막혔던 얘기를 읽고 나서야 감이 좀 잡혔어요. 다룰 수 있는 시술 종류, 단골 관리 경험처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걸 앞에 배치하라는 조언이 도움이 됐어요.
이력서 등록 페이지에 올려두고 나서는 연락 오는 매장들의 결도 좀 달라졌어요. 조건만 던지는 곳보다 제 경력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곳이 늘었고요. 그게 오히려 매장을 걸러내기가 더 쉬웠어요.
5. 새 매장 면접에서는 제가 먼저 물어보는 게 많아졌어요
신입 때는 면접관 질문에 대답하기 바빴는데, 경력 붙고 나니까 제가 먼저 묻는 질문이 많아졌어요. 계약서 작성 시점, 급여 정산일, 교육 기간 유무. 이런 걸 물었을 때 반응이 이상하면 그 자리에서 정리하는 게 낫다는 것도 배웠어요. 면접에서 걸러야 할 신호 정리한 글에 저도 겪었던 것들이 그대로 나와서 반가웠어요.
세 군데 면접을 봤고, 그중 한 곳은 조건은 좋았는데 대기실 분위기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접었어요. 숫자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더라고요. 결국 지금 매장을 고른 건 급여보다 정산일마다 구조를 술술 설명해주는 태도 때문이었어요.
6. 그만둔다고 말하기,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어요
제일 무서웠던 건 사실 실장님한테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순간이었어요. 근데 막상 말씀드리니까 담담하게 받아주시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미리 계산해서 정리해간 정산 내역이랑 인수인계 계획을 보시고는 준비 많이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 출근일까지는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범했어요. 손님들한테는 이직한다고 미리 말씀드렸고, 몇 분은 새 매장 위치를 물어보시기도 했어요. 정 붙였던 곳을 떠나는 게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감정 때문에 결정을 미루지는 않았어요.
7.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직을 결심하고 실제로 옮기기까지 두 달 넘게 걸렸어요. 그동안 제일 크게 바뀐 건 매장을 보는 눈이었어요. 예전엔 급여 숫자 하나로 판단했다면, 지금은 계약서·정산·근무 구조를 같이 봐요.
누구한테나 맞는 타이밍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손목이 신호를 보내고 정산이 애매해지는 시점이었지만, 다른 이유로 움직이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다만 감정만으로 결정하지 말고 숫자부터 한 번 확인해보시라는 말은 하고 싶어요. 그게 저한테는 제일 도움이 됐거든요.
